중국의 산학 문서 원본 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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{{위키데이터 속성 추적}} '''중국의 산학'''은 [[주나라]] 때에 기원한다. 이는 유럽 수학과 독자적으로 발달하였고, [[피타고라스의 정리]] · [[파스칼 삼각형]] · [[원주율]]의 정확한 값 등을 (대부분의 경우 유럽보다 더 빨리) 발견하였다. 이후 [[명나라]] 때부터 서양 수학이 전래되었다. == 주나라 ~ 전국시대 == [[파일:Chinese pythagoras.jpg|섬네일|280px|《[[주비산경]]》의 (3, 4, 5) 직각삼각형의 증명]] [[파일:Chounumerals.svg|섬네일|right|280px|[[산가지]]의 10진법 표시]] 고대의 수학은 [[역법]](曆法) 계산과 일상생활의 필요에서 생겨났다. [[주나라]](기원전 11세기~3세기) 때 이미 [[산가지]]가 사용되었다. 《[[구장산술]]》과 《[[주비산경]]》은 [[주나라]] 때 주로 집필된 것으로 보이는 수학서이지만, [[한나라]] 때까지 계속해서 내용이 추가되었다. 《[[구장산술]]》에는 [[연립 1차 방정식]]의 풀이, 여러 가지 [[도형]]의 [[면적]] 또는 [[체적]]의 계산이 수록되어 있다. 《[[주비산경]]》에는 3·4·5가 직각삼각형의 세변이 된다는 [[피타고라스의 정리]]의 예가 소개되었다. [[전국시대]]에는 수학으로써 봉직한다는 기사가 있고, 또 6예(六藝)의 하나로서 관리의 자제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과목이었다. == 한나라 ~ 남북조 == [[한나라|한대]](漢代) 이후에 많은 수학서가 저술되었다., [[후한]]의 [[장형 (학자)|장형]](78~139)은 [[원주율]]을 약 <math>\sqrt{10}\approx3.162</math>으로 계산하였다. 이는 《[[구장산술]]》에 등장하는 <math>\pi\approx3</math>보다 더 정확한 값이다. [[유휘]](劉徽, 225년 경 ~295년 경)는 《[[구장산술]]》을 편집하였고, 이에 상세한 주석을 붙인 《구장산술주》(九章算術註)를 출판하였다. 《구장산술주》의 마지막 장은 당나라 때 《해도산경(海島算經)》이라는 제목으로 분리되어 출판되었다. [[유휘]]는 극한(極限)의 사상으로 면적 또는 체적 계산을 교묘하게 증명하였다. 유휘는 또한 [[원주율]]을 <math>\pi\approx3.1416</math>으로 계산하였다. 손자(孫子, 5세기 경)는 《[[손자산경]]》을 집필하였다. (이는 《[[손자병법]]》을 집필한 [[손무]]보다 후대의 인물이다.) [[남북조]] 시대의 수학자 [[조충지]](429~500)는 《철술(綴術)》을 저술하였다. 이 책은 [[원 (기하학)|원]]에 관련된 수학을 논한 것으로 추측되나, 현전하지 않는다. 이 책에서 조충지는 [[원주율]]을 <math>355/113\approx3.141592</math>로 계산하였다. == 수나라 · 당나라 == 왕효통(王孝通, 580~640)은 《집고산경(緝古算經)》에서 [[3차방정식]]을 풀이하였다. 이순풍(李淳風, 602~670)은 당대의 수학서 가운데 10편을 《[[산경십서]](算經十書)》라는 제목으로 집대성하였다. 이들은 다음과 같다. * 《[[주비산경]]》 * 《[[구장산술]]》 * 《해도산경(海島算經)》 * 《[[손자산경]]》 * 《장구건산경(張邱建算經)》 * 《오조산경(五曹算經)》 * 《오경산술(五經算術)》 * 《집고산경(緝古算經)》 * 《수술기유(數術記遺)》 * 《하후양산경(夏候陽算經)》 == 송나라 · 원나라 == 송나라의 [[가헌]](1010~1070)은 《황제구장산경상해》(黃帝九章算經細草)과 《석쇄산서》(釋鎖算書)를 집필하였지만 둘 다 현전하지 않는다. [[양휘]]에 따르면, [[파스칼의 삼각형]]을 발명하였다고 전해진다. [[남송]] · [[금나라]] · [[원나라]] 초기에 이르는 동안 중국 수학은 진일보하였다. 이 시대에는 [[이야]](李冶, 1192~1279)·[[진구소]](秦九韶, 1208~1261)·[[양휘]](楊輝, 1238~1298)·[[주세걸]](1249~1314)의 4대가(大家)가 등장하였다. [[진구소]]와 [[양휘]]는 [[남송]] 사람이다. [[진구소]]는 《수서구장(數書九章)》에서 부정(不定)방정식을 상세히 다루었고, 또 [[영]](零)의 기호를 사용하였다. [[양휘]]는 [[가헌]]의 업적을 바탕으로 [[이항 정리]]와 [[마방진]]을 연구하였다. 이야와 주세걸은 [[금나라]] · [[원나라]] 사람이다. 이들은 특수한 방법으로 미지수를 나타내어 계산하는 천원술(天元術)을 처음으로 다루었는데, 이는 일종의 [[대수학]]이다. == 명나라 · 청나라 == 명나라 말기(明末)부터 [[기독교]] 선교사가 많이 들어와 서양의 수학을 전했다. 명나라의 [[서광계]](1562~1633)는 선교사 [[마테오 리치]]와 만나 《[[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|원론]]》을 중국어로 번역하였다. 청나라의 [[이선란]](1810~1882)은 《[[프린키피아]]》 등 서양 서적을 중국어로 번역하였고, 또한 현재까지 중국어에서 사용되는 수학 용어들을 도입하였다. == 신해혁명 이후 == 신해혁명 이후, 중국은 [[화뤄겅]](1910~1985), [[저우웨이량]](1911~1995), [[천싱선]](1911~2004), [[천징룬]](1933~1996) 등의 유명한 수학자들을 배출하였다. == 같이 보기 == * [[수학의 역사]] ** [[인도의 수학]] ** [[이슬람의 수학]] ** [[일본의 수학]] == 참고 자료 == {{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}} [[분류:중국 수학| ]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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