요한복음 5장 문서 원본 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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{{위키데이터 속성 추적}} '''요한복음 5장'''은 [[신약성경]] 중 [[요한의 복음서]]의 다섯 번째 [[성경의 장과 절|장]]을 의미한다. == 예루살렘에서의 명절 == [[예수]]는 1절에서 "명절"을 쇠기 위해 [[예루살렘]]을 방문한다. [[요한복음 2장]]과 [[요한복음 6장|6장]]에서 [[유월절]]이 한번씩 등장하는데, 2~6장의 사건이 같은 해에 일어났다는 관점에서는 이 명절이 [[신명기]] 16장에서 말하는 [[칠칠절]]과 [[초막절]]들 중 하나인 것으로, 2~6장의 사건이 3년에 거쳐 일어났다는 관점에서는 본문의 명절 역시 [[유월절]]인 것으로 추정한다.<ref>See also {{bibleverse||Exodus|23:14|NKJV}}</ref> [[요한 알브레히트 벵엘]]은 복수의 문헌을 인용하며 이 날이 칠칠절, 즉 현재의 [[성령강림주일]]이라고 주장했다.<ref>[http://biblehub.com/commentaries/bengel/john/5.htm Bengel's Gnomon of the New Testament] on John 5, accessed 6 March 2016</ref>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입장도 존재한다.<ref>[http://biblehub.com/commentaries/pulpit/john/5.htm Pulpit Commentary] on John 5, accessed 4 March 2016</ref> 9절에서는 이 날이 [[사바스|안식일]]였다고 말한다.<ref name="Oxford">Kieffer, R., ''John'', in Barton, J. and Muddiman, J. (2001), [http://www.islamicweblibrary.com/wp-content/uploads/2017/05/oxfordbiblecommentary.pdf The Oxford Bible Commentary] {{웹아카이브|url=https://web.archive.org/web/20190502062222/http://www.islamicweblibrary.com/wp-content/uploads/2017/05/oxfordbiblecommentary.pdf}}, p. 969</ref> == 베데스다 연못 == [[파일:P8170051.JPG|오른쪽|섬네일|150x150픽셀|[[이스라엘 박물관]]의 베데스다 연못 모형]] 예수는 [[베데스다 연못]]에서 "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으라"는 말로 38년간 앓던 병자를 고친다. 그러나 그 날이 [[사바스|안식일]]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병자를 나무라고, 그를 고친 이를 찾고자 하나 군중 속으로 사라진 예수를 찾지못한다. 예수는 이후 병자를 만나 죄를 짓지 말며, 죄를 지으면 더 흉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한다. 이후 병자는 자신을 고쳐준 이가 예수였다고 유대인들에게 말한다. 베데스다 연못의 유적은 현재 예루살렘에 남아있다. == 삽입구 == 3b절에서 4절의 내용은 [[텍스투스 레셉투스]]를 참조한 [[킹 제임스 성경]]에서는 등장하나, 대부분의 사본에서는 적혀져 있지 않다.<ref>Texts lacking this passage include [[Papyrus 66|<math>\mathfrak{P}</math><sup>66</sup>]], [[Papyrus 75|<math>\mathfrak{P}</math><sup>75</sup>]], [[Codex Sinaiticus|א]], [[Codex Vaticanus|B]], [[Codex Ephraemi Rescriptus|C*]], [[Codex Borgianus|T]], and [[Minuscule 821 (Gregory-Aland)|821]]</ref> 따라서 대부분의 [[본문비평|본문비평가]]들은 이 구절이 요한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이후 {{Link-en|삽입구|interpolation (manuscripts)|삽입된}} 것으로 간주한다.<ref>{{인용|author=Craig Blomberg|title=Jesus and the Gospels|year=1997|publisher=Apollos|pages=74–75}}</ref> {{인용문5|{{sup|3}}이 행각에는 소경과 절름발이와 중풍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는데 (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. {{sup|4}}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던 것이다.)|[[공동번역 개정판]]}} ==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 == 16절에서부터 유대인들은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하는데, 죽이기로 모의하기 시작했다고 적힌 사본도 존재한다.<ref>{{bibleverse||John|5:16|KJV}}. See e.g. the [[Textus Receptus]], [[Geneva Bible]] and [[King James Version]]</ref> 그러나 이 '죽이기로 모의했다'고 적힌 것은 18절에서 "죽이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"고 서술된 것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여겨진다.<ref>[http://biblehub.com/commentaries/ellicott/john/5.htm Ellicott's Commentary for English Readers] on John 5, accessed 5 March 2016</ref> 이 구절부터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는 기사가 나타난다.<ref name="Oxford2">Kieffer, R., ''John'', in Barton, J. and Muddiman, J. (2001), [http://www.islamicweblibrary.com/wp-content/uploads/2017/05/oxfordbiblecommentary.pdf The Oxford Bible Commentary] {{웹아카이브|url=https://web.archive.org/web/20190502062222/http://www.islamicweblibrary.com/wp-content/uploads/2017/05/oxfordbiblecommentary.pdf}}, p. 969</ref>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고자 한 근거는 첫째로 16절에서 말하듯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이고, 둘째로는 18절에서 말하듯 하나님을 "아버지"라 부르며 맞먹으려 들었기 때문이다. [[감리교]]의 창시자 [[존 웨슬리]]는 이를 두고 "예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해지려고 한 것으로 이해했다"고 말한다.<ref>[http://biblehub.com/commentaries/wes/john/5.htm Wesley's Notes] on John 5, accessed 5 March 2016</ref> [[아우구스티누스]]는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과 같다고 한 것은 [[요한복음 1장]]의 "말씀이 곧 하나님"이라는 서술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.<ref>[[Philip Schaff|Schaff, P.]] (ed.), [https://www.ccel.org/ccel/schaff/npnf107.pdf Homilies or Tractates of St. Augustin on the Gospel of John], Tractate XVIII, Nicene and Post-Nicene Fathers in the [[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]]</ref> 예수는 이어 자신을 아들에, 하나님을 아버지에 빗대며 이야기한다.<ref>[http://biblehub.com/commentaries/jfb/john/5.htm Jamieson-Fausset-Brown Bible Commentary] on John 5, accessed 6 March 2016</ref> 예수는 우선 아들이 아버지와 다른 동기를 가질 수 없고, 오직 아버지가 하는 일을 따라 할 뿐이라고 말한 뒤, 30절에서 이 비유에서 아버지가 하나님이고 아들이 자신임을 밝힌다.<ref name="Cambridge">[http://biblehub.com/commentaries/cambridge/john/5.htm Cambridge Bible for Schools and Colleges] on John 5, accessed 11 March 2016</ref> 이 비유 이후에 예수는 [[아멘]]을 두 번({{Llang|grc|αμην αμην}}) 사용하며 두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, 이 때 아멘 두번은 [[개역개정]]성경에서는 "진실로 진실로"로 번역되었다. 24절에서는 자기를 보낸 이를 믿으면 [[영생 (기독교)|영생]]을 얻으리라 말하고, 25절에서는 죽인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으면 살아날 것인데,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이야기한다. 개혁주의적 복음주의자 신학자인 [[D. A. 카슨]]은 24절을 [[시작된 종말론]]에 대한 강한 근거로 받아들이며, 신자들이 부활을 기대하며 [[말세]]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.<ref>[[D. A. Carson]], ''The Gospel According to John'' (Apollos, 1991), p. 256.</ref> 루터교 신학자인 하인리히 마이어는 이 "때"가 예수가 처음 온 것으로부터 재림하기까지의 시간이므로,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고 본다.<ref>[http://biblehub.com/commentaries/meyer/john/5.htm Meyer's NT Commentary] on John 5, accessed 8 March 2016</ref> == 사중 증언 == 31절에서 47절까지에서 예수는 자신을 사중으로 증언한다. 자기 자신이 말로 증언({{Llang|grc|η μαρτυρια}})한다면 참되지 못하다고 말하며 다른 네 가지의 증거를 이야기하는데, 각각 다음과 같다. * [[세례자 요한]]의 증언 (33~35절) * 예수 자신의 행적 (36절) * [[히브리어 성경|성경]]을 통한 아버지의 증언 (37~40절) * [[모세]] (45~47절) 예수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유대인들이 영생을 구하고자 성경을 공부하였으나, 성경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. 이후 예수는 [[모세]]가 그들을 고발한다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. {{인용문5|{{sup|45}}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. 너희를 고발할 사람은 오히려 너희가 희망을 걸어온 모세이다.|공동번역 개정판}} 이 때 모세가 그들을 고발한다고 이야기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. {{인용문5|{{sup|18:18}}'나는 네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키리라. 내가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주리니, 그는 나에게서 지시받은 것을 그대로 다 일러줄 것이다.|[[신명기]], 공동번역 개정판}} 신학자 [[알버트 반즈]]는 이에 더해 고대의 [[교부]]들부터 현대의 신학자들이 모두 신명기에 언급된 예언자가 예수라는데 동의한다고 말한다.<ref>[http://biblehub.com/commentaries/barnes/deuteronomy/18.htm Barnes' Notes on the Bible] on Deuteronomy 18, accessed 10 March 2016</ref> 이에 더해 47절의 "모세의 글({{Lang|grc|Γράμμασιν}}; his letter)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내 말({{Lang|grc|ῥήμασι}})을 믿겠느냐?"에서 "글"과 "말"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헬라어가 대조를 이룬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.<ref>[http://biblehub.com/commentaries/bengel/john/5.htm Bengel's Gnomon of the New Testament] on John 5, accessed 6 March 2016</ref> 이런 가르침은 다른 [[공관복음서]]에서는 십자가에 오르기 얼마 전부터 자신이 [[메시아]]라고 몇 번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비해, 요한복음에서만 특별하게 등장한다. 또한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예루살렘에서의 가르침을 짧게 서술하는데 비해, 요한복음에서는 이 내용이 모두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둔다. == 각주 == {{각주}} {{요한의 복음서}} [[분류:요한의 복음서의 장]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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